교사는 교감하기 나름이다
양성초등학교 교감 정철수
울산 가는 국도에서 장안사 들어가는 길로 빠지다 보면, 오른 쪽으로 유난히 음식점이 많은 동네가 있고, 맞은 편에 자리잡은 아담한 학교가 하나 있는 데 바로 장안초등학교이다. 몇 년 전 모 신문사에서 주최한 ‘아름다운 학교’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 사시사철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이 학교에서 나는 한원규 교감선생님을 만났다.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삶과 교육의 의미를 만남에서 찾고 있는 데, 한교장 선생님과의 만남을 기억할 때면 우리의 인생은 만남을 통해서 결정적 변화를 맞게된다는 부버의 이론을 떠올리게 된다.
천성이었든 후천적 학습이었든 지간에 당시 나는 교직에 대한 부정적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기계적인 가르침 외에 개인적인 희망이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소위 교포 교사였다. 그런 나에게 한교감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관심과 기대는 처음에 상당한 부담으로 와 닿았다. 그러나 교직생활 20년 만에 진심으로 나를 배려하는 선배, 앞날을 걱정해 주는 교감선생님의 진심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고, 교직생활에 있어서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원 출신이라는 명분 하나로 주위의 견제(?)를 뿌리치고 처음으로 주임교사, 그것도 학교교육과정운영의 핵심인 연구주임을 맡겨주셨던 일, 컴퓨터라고는 독수리 타법으로 치는 워드 기초 밖에 모르는 나에게 ‘우리 연구주임 컴맹이구먼’ 하시면서 자상하게 가르쳐주시던 모습 등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언젠가는 연수추천을 하시면서,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깊고 창의성이 뛰어난 교사’라고 추천 글을 써 주신 것을 보면서 감격했고, 이 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그렇게 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교감선생님과 2년여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인성교육 차원에서 기획했던 ‘장안어린이법정 운영’이 민주시민교육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평가와 함께 교직생활 20년만에 처음으로 교육감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겨주기도 했고, 마을주민들과 함께 했던 종합 학예제 ‘장안골 축제’는 전교생 84명의 미니학교의 여건에 제대로 부응하는 교육활동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교감선생님과 헤어진 1년 후 교육전문직 시험에 합격하고, 교감선생님과의 전화 통화에서 교감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될 사람이 되었구먼’이었다. 한 관리자의 신뢰와 기대 그리고 격려와 지도가 말썽꾸러기 교사 한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나 자신이 교감이 된 지금 절대로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제주도 섬사람의 순박함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도, 업무추진에 있어서는 어떤 도회지 선생님들보다도 세련된 이론과 탁월한 기교를 지니신 교감선생님께서 같은 교단에 몸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늘 행복했는데, 이제 떠나신 다니 아쉽고 슬픈 마음 가누기 어렵다. 늘 편찮으셨던 사모님께 헌신하시던 모습과 돌아가신 후 쓸쓸한 표정으로 허탈해 하시던 그 아린 모습을 내 어찌 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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