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임 이모저모

정년퇴임 - 학부모와 좌담회

제주조천 2006. 8. 15. 17:03
 

정년퇴임을 앞두고 학부형 좌담회


▶학부모 회장

  교장 선생님께서 44년간 교직에 계시다가 이제 정년을 앞두고 여러 일들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오늘 이시간을 통해 교장 선생님이 걸어 온 발자취를 잠깐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선 교장 선생님의 인사 말씀을 듣고 몇 가지 물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장

감사합니다. 

우선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학부모회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44년 전 물설고 낯 서른 거창에서 교직의 첫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일 처음 맡은 학년이 4학년이인데 학생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반장을 제일 앞에 앉히고 통역 시켜가며 수업을 한 기억이 납니다.  바로 이듬해 6학년을 맡았는데 여학생들은 열일곱 열 덟살 짜리도 있었는데 선생님과 두 서너살 나이 차이 밖에 안 났지만 정말 재미나게 생활한 것 같았습니다. 학생과 선생님이 완전히 친구 사이처럼 지냈던 같았습니다. 수업 마치고도 학생들은 집에 가지 않고 제가 하숙하는 집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심지어는 공부하다가 선생님고 학생들이 그냥 쓰러져 잠이 들곤 했었지요. 그렇게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지막으로 근무하게 된 연제초등학교는 나에겐 행운이었습니다.  연제 온지 이제 2년이 다되어 갑니다만 우리학교처럼 학생도 선생님들도 학부모님들도 모두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관리자와 교사 사이라든지 학부모 관계가 정말 한 식구처럼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 있는 학교가 매우 두뭅니다. 이런 좋은 학교에서 마지막 정년을 하게 되어 정말 행복합니다. 아무튼 마지막까지 44년의 교직 생활을 뒤돌아보게 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학부모 김유미 학부모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부회장님, 총무님 감사합니다.


▲ 학부모 질문 : 교직을 택한 특별한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 교 장 :

    예전에는 선생님을 하려면 사범학교를 나와야 했습니다. 사범학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가는데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학생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사범학교를 들어가겠습니까?  단지 사범학교는 입학하기는 어려운데 일단 들어가면 전 학생이 장학금을 받으니까 학비가 거의 없고 졸업하자마자 취직이 잘 되는 사범학교를 택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일반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공부는 제법 잘한다고 했었거든요 그러나  6형제 중에 맏이고 집안이 어려워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면 동생들은 중학교도 진학 못할 형편이었습니다. 집안 형편과 또 성격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교직을 택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학부모 질문 : 교장선생님의 초등학교 시절은 어떠했습니까?

▶ 교장 :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가 6.25 나든 해였고 제주도 4.3사건이 일어 난지 3년째 일어 난 해입니다. 학교는 군대 막사로 사용하였고 학생들은 햇빛이 들고 비바람만 막을 수 있으면 야산이나 들판 아무데서나 천막치고 공부하곤 하였답니다. 어느 때인가 공부하고 있었는데 경찰들이 들이닥치더니 선생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끌고 간일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선생님은 감옥에서 여러 해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초등학교 시절은 전쟁 중이었고 따라서 학생들 놀이도 전쟁놀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미군들이 지나가면 쌩큐, 베리마치 하면서 쫒아 다니던 기억이 나고, 평소에는 한번도 교회에 나가지 않다가  성탄절에  선물을 받으러 교회에 간 기억도 납니다.


▲학부모 질문 : 교장 선생님의 초임 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교장 :

 초임을 거창읍에 있는 창남 초등학교였는데 아마 30 몇 학급이 되는 거창에서 두 번째 큰 학교였는데 같이 발령 받은 친구가 여섯 명 이였는데 진주 사범, 제주사범, 안동사범, 충주사범, 순천 사범 출신 등이 같이 발령 받았는데 서로 경쟁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제가 첫해 4월인가 5월에 수업연구를 했는데 모두들 잘못했다고 선생님들이 공격하는지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울면서 교장 선생님께 내일 다시 수업연구 한번 더 하겠다고 떼를 써서 한 달 후 수업연구를 다시 한번 더 공개하기도 한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몇몇 총각 선생님들은 마을 총각들과 밤이면 밤마다 모여 놀곤 했는데 밤늦게 놀다가 남의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곶감들을 서리 해 와서 나누어 먹기도 하고 학부형 집에 들어가 닭서리를 해서 잡아먹기도 했는데 하루는 학교 교장 사택에 있는 닭서리를 하러 갔다가 교장 선생님안테 들켜 혼쭐나게 도망간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튿날 총각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안테 크게 야단치리라 생각했는데 교장 선생님은 모른척 아무말도 않더군요. 틀림없이 총각 선생님 짓이란 걸 알면서도 모른 척 한거죠.

아무튼 제가 첫 교직에 들서든 60년대 초는 지금보다 모두가 가난하고 못살아도 조그만 한 것도 나누어 먹고 남의 잘 못한 것도 용서할 줄 아는 정이 많고 가슴이 넉넉한 시기였던 같습니다.


▲학부모 질문 : 교장선생님께서 44년간 여러 학교를 다니셨는데 그 중에서 열심히                  한 학교는 어느 학교였습니까?    

▶교장 :

 저는 첫 부임지부터 학생들을 매우 좋아했나 봅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항상 함께 놀았고 일요일에도 학생들과 산으로 들로 돌아 다녔던 같습니다. 그래도 월말 일제 고사 때에는 항상 우리 반이 일등 했던 같습니다.

선생님 모두가 그렇게 지만 저도 가는 곳마다 최선을 다해서 아동들과 재미있게 지내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맡은 업무도 남에게 뒤지지 않게 열심히 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기억나는 학교는 71년도에 부임한 김해 장유 초등학교 였던 같습니다.  저는 그때 20대 후반이었는데 연구 주임을 맡아 새마을 학교를 운영했었습니다. 밤에는 리어카를 끌고 자연 부락을 돌면서 계몽 영화를 돌리고 새마을 운동에 대한 강연을 하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새마을 의식을 고취시켰고, 학교 안에서는 교육과정을 우리 고장에 맞게 재구성하는 작업을 주도해서 실지로 다른 학교 선생님과 주민들을 모아 놓고 연구 수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새마을 정신을 학생들에게 고취시킬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결과 73년도에는 전국 새마을 최우수 학교로 지정되었고 문교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교감으로 첫 발령 받은 장안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모두 여섯 분밖에 되지 않은   조그만 학교에서 선생님, 학생, 학부모들과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 교육개혁 1위 학교로 탈바꿈 시켜 3천만원 상금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교육은 결과 보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학부모 질문 : 교장선생님으로 발령 받으셨을 때  기쁨과 각오를 말씀해 주십시오.

▶교장 :

  교장 강습을 받으면서 과연 내가 한 학교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경영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학교는 교장의  경영방침에 따라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영향을 미쳐야 하지 그렇지 못 할 때에는 그 파장이 엄청납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교장 발령을 받고서 한편 기쁘기도 했지만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보통 텔레비전에 보면 높은 자리에 임명 된 사람이 인터뷰 내용을 보면 “책임감이 무겁습니다”고 하는데 그게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저는 교장으로서 내 나름대로의 다음과 같은 학교 경영관을 정하여 일관되게 실천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선생님들은 학생을 부모의 마음으로 사랑과 정성을 다해 가르치고  학생들은 남을 먼저 생각하며 자기 소질과 재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학교는 사랑이 넘치고 지역사회부터 신뢰를 받는 그런 학교를 만들어 가야 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학부모 질문 : 마지막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님께 남기고 싶은 말씀을 전해 주십   시오.

▶교장 :

 저의 집 거실에는 水適穿石(수적천석) 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자기 나름대로 그 방면에 달인들이 참 많습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을 더 뚜렷해 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전문가가 되고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좋은 결과만 기대한다면 그것보다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부모님의 역할은 자기 자녀의 소질을 빨리 찾아내고  발휘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하고 꾸준히 개발하도록 하는 일이 어떤 다른 역할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학부모 질문 : 마지막으로 더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교장 :

  44년전 골덴 양복에 1학년 입학할 때 가슴에 다는 이름표보다 더 큰 명찰을 가슴에 달고 학생들 앞에서 으스대던 열아홉 총각 선생님이  이제 머리엔 하얀 서리가 내리고 얼굴엔 온통 주름 투성이 노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세기가 가까워지다니 참 많은 세월이 흐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세월을 뒤돌아보니 가슴 졸이며 애태우던 일, 우쭐대며  으스대던  일, 깊은 절망에 빠져 어쩔 줄 모르던 일, 참으로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그러나 그 많은 세월 속에서도 큰 과오를 남기지 않고 이렇게 무사히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없습니다. 더구나 마지막을 연제에서 마친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요즘 학교마다 이런 일 저런 일로 한시도 마음 편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교장 선생님을 볼 때마다 저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저는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는데 인복이 많아서 좋은 선생님과 좋은 학부형님을 만나서 이렇게 행복하게 정년을 맞는가 봅니다. 다시 한번 연제초등학교 선생님 그리고 학부회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