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과 어머님께 매일 문안 인사 올린다.
나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할아버님과 할머님
그리고 아버님과 어머님께 문안 인사 올린다.
"할아버님, 할머님
그리고 아버님,어머님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그리고 커텐을 열어 방을 환기 시킨다.
그리고 그 전날 일어났던 여러가지 일들 중에
기쁜 일을 전해드리기도 하고 안 좋은 일을 전해드리기도 한다.
그러나 할아버님과 할머님, 아버님 어머님은 말 없이 항상 웃기만 하신다.
지난번 이사 오면서 할아버님과 할머님,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 영정을 모실려고
뒷배란다를 쳐 내면서 이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소중한 공간이 될 줄 몰랐다.
내 나이 칠십이 다 되어 가도 이 분들 앞에서는
여덟살 어린아이일 뿐이다.
짜증을 내도, 어리광을 부려도 다 받아 줄수 있는 분들이
바로 옆에 있기에
너무 행복하다.
나의 할아버님은 珍자 玉자이시다.
4살때 어머님을 여이고 홀아버님 밑에 어렵게 유년을 보내시고
홀로 자주성가하신 분이셨다.
돌아가시는 해에 나이가 여든 세살이셨는데 그해 보리타작을 손수 하실 정도로
평생을 부지런하게 살으신 분이셨다.
돌아시는 날은 지금도 나에게는 눈에 선하다.(그때 내 나이 아홉살이었다.)
저녁을 맛있게 잡수시고 일찍 자리에 누우시겠다고 방으로 들어 가셨는데
조금 있으니 아버님을 방으로 부르더니 "나좀 일으켜 다오" 그러시고 조금 있으면
"나를 눕혀라" 를 몇번이나 하셨다.
모두들 너무도 놀라 어쩔줄 모르고 당황하고 있는데 조금 정신을 차리시더니
"모두들 모이라" 고 하시더니 이제 내가 갈때가 다 된 것 같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라고 하시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손을 꼭 잡으시고
어머님께 유언을 하셨다.
" 얘야, 네가 살아 보니 남편이 일을 못하니 힘들지
원규는 일을 시켜야 한다. 귀한 자식일수록 일을 시켜야 한다." 라고 하시곤 숨을 거두시었다.
난 평생을 살아 오면서 이 말을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아버님은 내가 20살 되는 1962년 음력 4월 23일에 돌아 가셨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남 거창으로 교사 발령 받은지 겨우 한달이 지난
어느 토요일 오후 학교 교무실에 있었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전보 한장을 나에게 전해 주었다.
무심결에 받은 전보에는 부친 사망 급래 여섯글자였다.
밝은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였다.
내가 20살, 원환이가 17살, ,미국있는 원화가 14살
원배 11살, 원심이 8살, 원유가 6살
어머님은 어린 6남매의 무거운 짐을 한꺼번에 짊어지게 되었으니
어머님의 그 막막한 마음이 어떠했는지 짐작이나 할수 있을까 ?
어머님은
세상에 모든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아버님이 돌아 가신 슬픔보다는
이 어린 아이들을 배 고프지 않게 키우려고
험하고 힘든 일을 억척스럽게 해 나갔다.
그런 와중에 다행인 것은 그래도 내가 교사로 근무하고 있어서
어머님의 어깨를 조금은 덜 수가 있었다.
나도 교사 생활 하면서 월급은 거의 다 고향으로 보내고
가정교사를 하면서 어려움을 같이 이겨내었다.
그런 어머님은 여든 여섯이 되던 해 2002년
아버님 곁으로 돌아 가셨다.
이 안에 내가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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