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나려 하네
오랜 동료교사였고 친구였으며 다정한 벗이였던 그
둘 다 아픈 상처를 안고 부부란 이름으로 같이 보낸 세월이 4년 3개월
그리고 유방암이 재발되어 암과 사투를 벌이며 보낸 세월이 만 3년
이제 그가 이 세상을 떠나려 한다고 한다.
예전처럼 지난 2월 16일 혼자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갔고
늦어도 18일쯤엔 퇴원해 오리라 생각했는데 퇴원이 늦어졌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주치의 선생님이 보호자를 보고 싶다고
올라 오라고 한다.
2월 22일 주치의와 마주 앉았는데 어찌나 마음이 불안한지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이제는 어떤 항암주사도 듣지 않은다
그러니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대강 이런 말인것 같은데
그동안 얼마나 어렵고 힘든 3년이었는데
3년간 3주마다 계속해서 항암주사를 맞는 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 연속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고통도 참았으며
나는 그가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참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것이 참으로 더 마음이 아팠다.
그럴 때마다 그는 오히려 나를 위로까지 하였다.
그 고생도 헛되이 이제 내 곁을 떠나려고 한다.
나로서는 도저히 느낄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한번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고
그래도 오히려 무척 행복해 하던 그였는데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
아아 눈물이 앞을 가려서 더 쓸수가 없다.
2월 26일 부산으로 모셔 가기로 하였다.
돌아 가시더라도 부산에 가서
그 동안 친하게 지내던 얼굴이나 보고
돌아 가셔야 덜 억울할 것 같았다.
26일 오전 6시 50분 앰브란스로 강남세브란스 병원문을 나셨다.
가다가 길거리에서 돌아 가시면 어떻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더구나 비가 오고 안개가 너무 짙게 끼여 정말 을씨년스럽기만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오전 11시 30분
부산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였다.
이제 모든 치료를 포기하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마지막 말을 하여야 하는데 용기가 안 난다.
어떻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아무리 고민을 하여도 대답이 안 나온다.
그저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본인은 너무 편안하고 좋아하였다.
산속에 있어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시설도 깨끗하다고
그래서 잘 내려왔다고
본인도 어렴픗이 느끼는 것일까?
27일 햇빛이 너무 좋았다.
4층에 햇빛마루라는 곳이 좋다고 해서 그리 가기로 하였다.
조용하고 햇볕도 따뜻하고 너무 좋다.
오랫만에 햇빛을 본다고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그는 휠체어에 앉고 나는 그 곁에 의자에 앉았다.
그러더니 그가 말했다.
" 여보 이제 나는 이 곳을 살아 나갈수 없을 것 같애 미안해"
자기도 마지막이라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는 것 같다.
" 아니야,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기적이라는 것도 있고 당신은 살수 있어" 라고 했지만
그냥 해보는 소리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 아! 정말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영영 내 곁을 떠난단 말인가?
가슴이 미어진다.
아침에 도착했더니 간호사가 보자고 한다.
지금 어머님이 임종의 증상을 보인다고 1인실로 갔으면 했다.
손톱이 하야지고 살이 빠지고 소변의 냄세가 심하고
이제 모든 것을 준비하라고 한다.
또 하나는 어제까지 말을 더듬더듬했는데
오늘부터는 말을 할수가 없는지 입만 달삭거릴 뿐이었다.
내일인가?
모래인가?
'우리집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9제 추모사 (0) | 2010.04.18 |
---|---|
나의 작은 농장 (0) | 2010.04.16 |
경인년 설날 아침에 (0) | 2010.02.19 |
우리집 설 지내기 (0) | 2010.02.16 |
경인년 새해의 바램 (0) | 2010.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