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은 할아버님이 58주년 기일이었다.
할아버님이 돌아 가신지 벌써 58년이 되었다. 1951년이었으니 내가 아홉살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할아버님이 돌아 가신날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이가 아흔이었지만 돌아 가시던 날 저녁까지도 맛있게 잡수시더니 오늘은 일찍 자고 싶다며
방으로 가시고 얼마 안 되어 아버지를 부르시더니 좀 일으켜 달라고 하고,
얼마 있다가 눞혀 달라고 하셨다. 그러기를 몇번 그러더니 새벽 한 두시나 되었을까
어머니와 나의 손을 잡으시더니 어머님께 이렇게 말씀 하셨다.
" 얘야(어머님을 지칭), 네가 살아 보니 남편(아버님을 지칭) 일 못하니까 힘들지?
너는 니 자식을(나를 지칭) 귀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어릴때 부터 일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나를 한참 바라보시더니 운명하셨다.
나는 평생 이말을 한시도 잊어 본적이 없엇다.
교직에 44년이나 있으면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남들이 싫어하는 일이나 힘든 일은 내가 먼저 자원해서 일을 하곤 했다.
할머님은 그때 여든 세살이었다.
할아버님이 돌아 가시자 할머님은 하루 종일 한 마디 말도 없고
대문만 바라 보시며 울곤 하셨다.
그리고 그믐과 보름에 삭막을 하시면 어린 아이처럼 소리내어 엉엉 우셨다.
그러시더니 그해 8월 18일에 돌아 가셨다. 할아버님이 6월 22일에 돌아 가셨으니
56일만에 할머님도 할아버님 곁으로 가신 것이었다.
그 당시 동네 사람들은 이 두분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두고 두고 하셨다.
이번 할아버님 제사에는 작은 며늘애가 해산한지 한달 남짓 밖에 안되었고
큰 며늘애도 만삭이라 힘들 것 같아 오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낮부터 저녁까지 몇통을 전화 했는지 모른다.
"지금 뭐합니까?"
" 힘드시죠?" 등 등
자기가 직접 내려 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화 한 것 같다.
착한 아들과 며늘애들 이런 자식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다음은 할어버님 축문이다.
2009년 기축년 음력 6월 22일
通政大府府君 할아버님,
淑人水原白氏, 淑人全州李氏 두 분 할머님 신위 전에 삼가
효손 원규가 고합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할아버님 돌아가신 날이 돌아 왔습니다. 그 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이 오면 더욱 더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보고 싶고 그리워집니다.
올해 집안에 경사가 겹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지난 양력 7월 3일 작은 증손자 창훈이가 아들을 낳았고, 큰 증손자 경훈이도 10월에 출산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할아버님 기일에 증손자들이 참석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님과 할머님께서도 기뻐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비록 제가 혼자 할아버님과 할머님을 모시어도 정성껏 맑은 술과 제수를 마련하여 드리오니 함께 강림하시어 흠향 하옵소서
나 혼자 할아버님과 할머님을 모시었다.
좀 쓸쓸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정말 정성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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