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이야기

나의 초. 중학교 졸업앨범

제주조천 2008. 3. 19. 13:36

                                               나의 초 중학교 시절

                                                                          

나는 韓자 炳자 鎬자 와 高자 太 자 善자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 났다. 아버지는 셋째로 태어 났지만 위로 두분 형님이 어릴적에 돌아 가셔서  실질적으로 장남 역할을 하였으니 나는 우리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더구나 아버지가 서른 일곱까지 자식이 없다가  어머니를 만난지 일년도 안돼 나를 낳았으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물론 일곱 분이나 되는 고모님을 비롯한 온집안 친척들까지 기뻐하셨다고 한다.

그 후로 어머님은 4남 2녀를  낳으셨고 모두 건강하게 키웠으니 어머님은 우리 한씨 집안에 기둥이었다.

 

내가 아홉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님께 유언하기를 귀한 자식일수록  일을 많이 시켜야 한다고 하셨다. 나도 그때 할아버님께서 유언하실 때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어릴 때부터 어떤 일을 시켜도 열심히 하였다.  여름에는 땡볕아래 하루 종일 밭에 김을 매기도 하였고 새벽 4시에 어머니를 따라 일어나서 몇 십리 산길을 걸어 나무를 해 오기도 하였다. 그럴 때 마다 동네 분들은 나를 칭찬하였고 그 칭찬이 듣고 싶어 더 열심히 일을 하였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있어 선생님께서 나를 반장을 시켜주셨다. 아마 집에서 하듯이 어린 것이 주위 정리정돈도 잘 하고 청소도 잘하였으며 시험을 보면 거의 100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00점을 받아 어머님께 보이면 어머님은 그럴 때마다 온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원규가 100점 받았다고 자랑하고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반장이 되었다고 자랑을 하니 난 더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어머님이나 아버지께 항상 원규는 무엇이든지 잘한다고 칭찬만을 하셨다.

어머님은 초등학교 4학년 졸업밖에 안했지만 어떤 교육자 보다 더 뛰어난 교육철학을 가지셨고 앞을 내다보는 선경지명이 뛰어난 분이셨다. 내가 초등학교 6년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반장을 하였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3년간 계속 반장을 하면서 1등을 놓치지 않은 것도 어머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칭찬을 적절히 배려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는 살림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끼니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버지도 면사무소에 다녔고 얼마 되지 않은 조그마한 땅에서 다른 사람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어머님 혼자 힘으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나는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어머님을 따라 밭에 다니면서 일을 하였다. 학교를 마치면 밭으로 가서 어머님 혼자 일하는 것을 도와 드렸고, 특히 겨울방학 때에는 보리밭 김매기, 여름방학 때에는 조밭에 김매기 등 매일 밭에서 지낼 정도로 일을 하였다. 내가 5-6학년이 되면서는 어머님보다 더 빠르게 김을 매고 농사지은 것을 집에 가져 올 때에도 등짐으로 날랐는데 어머님 보다 더 많이 날랐다. 그러나 그렇게 일을 많이 하여도 짜증 한번 낸 일이 없었고 어머님과 같이 일하는 즐겁기만 했다. 아마 어머님은 계속 나를 잘한다고 칭찬하였고 그 소리를 듣고 싶어 지친 줄도 모르고 일을 하였던 같았다.

 

그렇게 힘든 일을 많이 하였지만 행복한 초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1957년 중학교 1학년 때 지방자치 선거를 처음 도입하여 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해 이었다. 아버님과 가까운 사람이 면장 선거에 지는 바람에 그 이듬해 면사무소를 그만 두었으며 그 후 집안은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웠지만 아버님과 어머님은 자식들 교육은 어떻게 해서든지 꼭 마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셨다. 

 나는 중학교 3년 동안 반장을 하였고 학교 회장이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회비를 납부하지 못해 일제고사를 치루지 못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 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나를 격려하여 주시고 마음 아파하셨고 가정형편이 어렵다고 공부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시기도 하였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140Cm 이었는데 3학년 때 키는 146Cm 밖에 안 되었다. 3년 동안 6Cm 밖에 자라지 못했다. 그것은 3학년 내내 점심 도시락을 가져 간적이 없었다. 모두들 점심시간이 되면 집에서 싸 주신 도시락을 먹을 때 나는 혼자 담을 넘어 산소가 있는 곳에서 드러누워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내면서 배고픔을 잊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일제고사를 볼 때에도 수업료를 내지 못하면 시험을 못 보게 하였는데 그 때에도 그 산소에 누워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내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그래도 한번도 부모님을 원망해 본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그 어려운 형편에도 학교를 갈 수 있게 하여 주시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다른 부모님 같았으면 학교를 그만 두게 하였을 것이다.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자식들에게 잘해 주지 못해 모두들 잠들 때 부엌에서 울곤 하셨다.  이러한 형편에 고등학교에 진학 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라 내 마음속에는 중학교만 졸업하면 취직을 하여 돈을 벌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어머님께 내 생각을 말씀 드렸더니 한참 동안 화를 내시더니 조용히 이야기 하셨다.

"원규야, 네가 이 자리에서 주저앉으면 네 동생들은 공부할 기회가 영영 없게 된다.

너나 내가 3년만 고생하여 네가 선생이 되면 동생들 다 공부 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어머님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범학교 입학시험을 보게 되었고 당당히 12대1이라는 경쟁 속에 2등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3년 후 선생이 되었고 어머님과 약속대로 동생들 학비를 내가 책임질 수 있었다. 참으로 어머님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찌 교직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어머님의 현명한 판단이 내가 교직생활을 할 수 있게 하였고 원배 원유도 상고를 졸업 할 수 이었다.


 


 

                  조천초등학교 32회 졸업 기념 사진

 

6학년 담임 선생님은 김태희 선생님으로 멋쟁이였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욕심이 많아 무엇이든지 1등을 해야하기 때문에 기합도 많 받고 매도  많이 맞았다.

그래서 이들이 좋아하지 않았고 선생님이 없을 때에는 욕도 많이 했었다.

특히 반장인 나는 다른 학생들 보다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더 많이 벌도 더 받고 매도 더 많이 맞았다.


                                  나는 제일 뒤쪽 오른쪽에서 4번째임 


 

 

조천중학교 제8회 졸업 기념사진(1959년 3월 10일 졸업)

 

담임 선생님은 내 일생에 가장 영향을 미치신 선생님이시다.

제주대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첫 부임지이고 첫담임을 맡으셨다.

영어를 담당하신 선생님은 젊은때 많이 방황하시고 동네 깡패이셨다고 한다.

그러더가 마음 잡고 공부를 하셔서 중학교 영어 선생님을 하신다고 하셨다.


                       홍태휴 선생님은 앞줄 왼쪽에서 6번째이고 난 가운데줄 왼쪽 첫번째임


 


조천 중학교 학도호국단 임원들 졸업기념

                        나는 오른쪽에서 두번째임(키가 가장 작았음)

 

 

              뒷쪽 온쪽은 규율부장 김정수, 그 오른쪽은 학생대대장 안병찬

                       앞쪽 왼쪽은 학생회장인 나, 그 옆은  총무부장 조인수

 

 

                                        사범학교 진학용  증명사진

 

 

                              졸업장을 V자형 처럼 들고(오른쪽에서 두번째임) 

 

 

영어 선생님 답게 졸업사진도 May  You  Succed의 S자형으로

(남학생 앞에서 13번째가 나 )

키가 작았는데 반장이기 때문에 줄에 들어거 설 때에는 일부러 뒤에 서곤 했음

 
사랑 - 바이올린
선구자 - 바이올린
님이 오시는지 - 바이올린
Hymn - Bill Douglas
Serenade To Summertime - Paul Mauriat

Amore Grande Amore Libero(위대한 사랑) - Paul Mauriat
Summerchor(Aus, Madame Butterfly) - James Last
Serenade To Spring - Secret Garden
Pardonne Moi(용서하세요) - 남택상
Dream Polonaise - Los Chacos



My Love Is Like A Red, Red Rose(English Folksong)
- Phil Coulter -
A Bunch Of Thyme - Phil Coulter
Take Me Home - Phil Coulter
Moonlight Serenade - 남택상
Sunset - Jean Claude Borelly

Red River Valley(홍하의 골짜기) - Paul Mauriat
Devoted To You(당신께 드리리) - 남택상
First Of May(5월의 첫날) - 남택상
Silent Stream(작은 시냇가) - 남택상

에델바이스(사운드 오브 뮤직 OST) - 보석상자

슈베르트 자장가(오르골) - 보석상자
Love Makes The World Go Around(맑은바람이 그대를 깨우거든)
- Giovanni Marradi -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 Kenny G
Mary's Boy Child - Phil Coulter
Good King Wenceslas - Phil Coulter
Winter Wonderland - Phil Coul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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