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아내의 12주기 제사 축문

제주조천 2016. 1. 22. 11:45

                               아내의  12주기 제사 축문


병신년 양력 일월 초삼일 남편 한 원규는 부인 전 길여님께 고하나이다.

흐르는 세월이 유수라더니 당신이 가신지도 벌써 12년째가 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더욱 사무칩니다. 돌이켜 보면 2003년 가을쯤부터 항상 건강하고 활발하던 당신은 가을이 채 되기전부터 감기가 걸린 것 같다고 동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였지요.

그러나 잔기침은 멈추지 않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닌 것 같지만 원체 똑똑한 당신이 하는 일이라서 자기가 잘 알아서 하려니 무심한 나는 별 관심도 안 가졌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에게 미안하고 후회되는 것이 많지만 가장 미안하고 후회되는 것은 만약에 그때 좀 더 일찍 당신을 큰 병원에 같이 가 진찰을 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사무칩니다.

여보! 요즘 시간이 나면 해운대 모래사장 길을 많이 걷습니다. 길을 따라 걸으면 호텔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 노보텔 호텔 앞을 걸을 때면 당신이 더욱 생각납니다.

그 해 내 생일에 대구에 가서 당신과 가족 사진을 찍고 돌아오면서 경훈이가 당신 생일은 해운대 노보텔 호텔에 예약해 두었다고 말했지요. 그 당시 당신은 밥도 제대로 목에 넘어가지 않아 밥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그럴 때 마다 난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당신은 자기 생일을 호텔에 예약까지 했는데 어찌 병원에 입원해야 하느냐고 한사코 반대하였습니다. 드디어 생일날 노보텔 호텔에서 식사를 하는데 그 전날까지 거의 식사를 못하던 당신은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정말 다행이다 생각했지요. 그리고 뒷문을 통해 경훈이와 은주 그리고 동우까지 모래사장을 한참 동안 걸으면서 행복해 보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웬만하면 그쪽까지 걷지 않고 뒤돌아 오곤 한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입원을 하였지만 너무 늦어 당신은 영영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모두가 못난 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후회를 평생 짊어지고 살겠지요. 저 세상에 당신을 만나면 그 때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겠습니다. 여보! 올 해 동윤이와 동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우 동엽이 동재 동수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모두가 당신이 잘 보살펴 준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이 손자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잘 자라도록 당신이 항상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경훈이 내외가 맑은 술과 음식을 정성껏 마련하여 올리오니 음향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