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라오스는 어떤 나라인가?

제주조천 2009. 9. 22. 12:31

라오스 여행정보

                                             방비엥 미스터 폰 투어 제공

1.국가

  1)정식 국명 : 싸탈라나랏 빠싸티빠따이 빠싸쏜 라오(라오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

  2)형태 : 사회주의 공화국

  3)국가 설립 연도 : 1975년 12월 2일

  4)국기 : 적색(혁명 시 흘린 피를 상징)

          청색(발전 번영)

          흰색 원(밝고 찬란한 미래)

 5)국호 : 국민, 언어, 문화를 지칭 할때는 “라오(LAO)” 라고 쓰고

          나라 적인 개념으로는 “라오스(LAOS)” 라고 한다.


2.지리

 1)위치

   동남 아시아에 위치 북쪽으로 중국, 동쪽 베트남, 남쪽 캄보디아,

   서쪽 태국, 북서쪽 미얀마에 둘러 쌓인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유일한

   내륙국가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접국들과의 분쟁이 있게 한 원인이 되었다

 -총 면적 : 23만 6천 8백 평방 km(남한의 3배, 한반도의 1.1배

 -기   후 : 열대몬순(5~10월은 우기, 11월~4월은 건기)

 -지   형 :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약70%) 나머지 평야와

             고원지대(2000m 이상의 산이 9개)다.

 -천연자원 : 목재, 전기(수력), 석고, 주석, 금, 보석(원석)


3.인구

  라오스 인구는 국토 면적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

첫째 프랑스 식민지 때 독립을 위하여 많은 희생이 있었다.

둘째 민족 간(좌파, 우파)의 이념 대립으로 유혈 충돌이 잦았다.

셋째  베트남 전쟁당시 미국이 라오스가 베트남의 후방기지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라오스에 400만 톤이라는 어마어마한 폭탄을 투하하여 베트남 보다 더 많은 전상의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1975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기 전후에 좌, 우파간의 이념 대립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약30만명) 태국과 서방으로 떠났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라오인은 164,654명이고 인구 성장율은 2.5%이다. 15세 이하의 어린이 비율이 전체42.7%로 1,718,000명이나 되고 65세 이상 노년 인구는 전체3%인 121,000명에 불과하다.

남녀 비율은 여성이 더 많고 이혼율도 1.5%로 높은 편이다.

-인구수 : 540만 명(2000년도 기준)

-종족 : 라오 룸(저지대의 라오족), 라오쑹(고산 지대의 라오족),

        및 소수민족(68종족)

-종교 : 소승불교(95%),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소수 신앙의 자유는

        인정하나   원칙적인 선교활동은 금지하며 국교는 없다.

-언어 : 공용어는 라오어, 그 외 각 민족의 고유 언어 사용,

        외국어는 영어, 불어를 쓴다.

라오스에는 약92개의 방언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중에서 도라오어가 표준어로 전체인구의 2/3가 사용하고 있는

국가 공식어이다. 라오어는 저지대에 거주하는 라오 룸 족의 언어이나 이들이 주요 종족으로 정부의 주요 요직과 정치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라오스 전역에서 통용되고 있으며, 모든 학교도 이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

6성조를 가지고 있는 이 언어는 같은 낱말이 많으나 높낮이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자음 34개와 모음 28개가 있다. 문서에 로마 알파벳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4.수도

1)비엔티안(위앙 짠) 인구는 약 55만명

   우리는 라오스 수도를 “비엔티안” 이라지만 라오스 사람들은

   “위앙짠” 이라고 부른다. “비엔티안”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유럽풍으로 부른 것이 국제적으로 알려져 굳어지게 되었다.

    “위앙” 이란라오스 어로 “도시”를 뜻한다. 그리고 “짠”이란

   향기가 강한 나무의 한 종류인 “백단향”을 일컫는

   산스크리트어인 chandana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백단 향의 도시”가 된다. 이외에 “짠”은 달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 말에 따른다면 “위앙 짠” 은 “달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5.시차 및 전압

 -한국보다 2시간 늦음. -220V 전압은 한국과 같으나 헤르츠가 다르다


6.차량통행 방식

 -우측 통행으로 우리나라와 같다. 태국은 좌측 통행으로 반대 방향임.

 -라오스에 우리나라 자동차가 많은 이유중의 하나다.


7.화폐단위

 -kip 낍 : 공식 통화는 낍이지만 태국의 밧과 미국의 달러가 같이

           통용되고 있다.

 -2004년 1월 10일 기준 1$=10400 kip

 -500 낍 이하는 잘 쓰지 않으며 최고의 단위 화페는 20000 낍이다.



8.교육

 -학제 : 초등과정 5년(의무교육), 중등과정 6년, 대학 3개교

         (의과, 공과, 종합)

 -초등교사의 1/3이 정규자격 취득자가 아님.


9.경제

 -1인당 국민 총 소득 200$ (1997년 한국 8,581$) 사유재산 인정

 -노동인구 100~150만명

 -주요 농산물 : 고구마. 옥수수, 커피, 사탕수수, 담배. 면화


10정치

 -17개주 1특별시이며 18세 이상 선거권을 가지고 평등선거

 -주요정당 : 라오 인민혁명당 (야당은 없다)

 -대통령제이며 현 대통령은 “캄파이 씨판돈”이다.


11.군사

 -육군, 공군, 수군의 총 5개사단

 -모집방법 : 지원 병제 (사실은 17세부터 26세 남자 대상으로 한 징병

  제로 18개월 복무)


12.의료

 -평균 수명 :59세, 유아 사망률 12%, 국민의 95%가 요드 결핍

 -비 위생적 생활습관과 식수로 발병율 높고 낙후된 의료수준으로

  응급시 태국으로 후송함.


13.교통

 -철도가 없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태국 농카이에서 비엔티안 구간을 연결할 계획임.

 -내륙국으로 항만이 없어 경제발전의 걸림이 되고 있다.

 -산지가 많아 국내항공노선이 발달되어있다.(1998년 전국 52곳)


14.라오스 음식

 -주식은 밥(찹쌀밥)과 야채, 물고기, 젓갈류의 소스가 잘 발달되어 있다.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많다.


15.라오스 역사.

1)고대 라오스 란상 왕국

    라오스인들은 원래 중국 윈난성 지방에 거주했던 타이족의 일파이다.

7세기 무렵 타이족은 “난 짜오 왕국”을 건설 점차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였다.

남쪽으로 세력을 넓혀 가다가 1253년 몽고 “쿠빌라이칸”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타이족 사람들은 지금의 라오스, 미얀마, 중국의 해남도, 베트남, 인도의 아 쌈 등지로 퍼져 나갔다.

라오스 지역에는 여러개의 소국들이 세워 졌는데 14세기 초 무렵 “므엉쓰와”의 “파 응움” 왕은 이 소국들을 통합하여 라오스 최초의 통일 왕국인 “란쌍 왕국”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강대국인 “앙코르왕국”에서 성장한 그는 그곳 공주와 결혼하고 “앙코르왕국”의 종교였던 불교를 라오스 지방에 전파하는데 힘썼으며 싸얌과 전쟁을 벌려 현 태국의 북부와 북동부 지역까지 영토를 넓히기도했다. 1562년 “씻타티랏 왕”은 미얀마의 침략 위협을 피하면서 아유타야와 교류를 다지기 위해 수도를 “비엔티안”으로 옮겼다. 그리고 주변국들 중 유일하게 미얀마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1640년경 “쑤링아 윙 왕” 때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맞아불교와 예술발전에많은 힘을 쏟아 주변국에서 많은 승려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방문 불교 학문의 중심지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메콩강을 이용 교역을 활발히 하여 부를 쌓아 태평성대를 구가 하였으나 왕위 계승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왕자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1707년에는 북부의 루앙프라방이, 1713년에는 남부의 “짬파싹”이 각각 독립해 3국으로 나눠졌다.

1805년 “위앙 짠”의 부왕이었던 “짜오 아누”는 싸얌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라 3국 통일을 위해 힘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베트남과 친분을 쌓아 싸얌의 북부지방인 “싸라부리”까지 영토를 넓혔다. 이에 격분한 싸얌은 “위앙 짠”을 초토화 시켰고 왕가의 혈통은 완전히 단절되었다. 루앙프라방은 싸얌과 베트남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로 전락하여 명맥은 유지하였으나 “짬파싹”은 싸얌의 “씨앙쾅”을 비롯한 일부지역은 베트남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2)프랑스의 라오스 지배

  1850년 이후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커져 1863년 이후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차례로 프랑스 보호령이 된 이후 “씨앙쾅”이 베트남 지배하에 있다는 구실로 라오스를 넘보기 시작 싸얌에 압력을 가해 라오스를 완전히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는 3국으로 분리된 라오스를 통합 시키고 “비엔티안”을 행정수도로 정하였다.

루앙프라방은 “싸싸왕웡 왕”을 상징적인 왕으로 하는 왕도로 정하였다.

이 때부터 “라오스”라는 이름을 정식 국명으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프랑스는 라오스가 내륙국에다 인구가 적어 경제적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개발을 등한시하고 소수민족을 가혹하게 다루고 세금을 혹독하게 거두었다. 이에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 세 차례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3)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립투쟁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어 인도차이나 반도에 대한 힘이 약해지자 태국은 그 틈을 타서 “짬파싹”을 다시 병합했다. 프랑스는 라오스에 대한 우선권을 태국에 빼앗길 것을 우려 라오스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프랑스뿐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역사와 문화교육을 시켰다. 그것은 오히려 라오스 젊은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일본은 프랑스로부터 라오스를 빼앗기 위해 프랑스군을 해체하고 라오스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자 군대를 철수하였고 프랑스는 다시 라오스로 진출하게 되었다.

루앙프라방의 수상 “폐차랏”은 루앙프라방 이남 지역들을 흡수 통합했다. 그리고 반 프랑스 세력인 “라오 이싸라(자유 라오스)”를 구성 프랑스의 재 진출에 저항하였다. 몇 차례에 걸친 전투 끝에 “폐차랏”은 태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1947년 라오스는 프랑스 연방하의 입헌 군주국가로 인정받아 자치권을 획득하는등 제한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라오 이싸라”가 분열되다가 해체되자 “라오 이싸라”의 완전 독립파였던 “쑤파누웡”은 베트남의지원으로 해방운동 좌파인 빠텟라오(라오스의 나라)를 결성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와 싸워 씨앙쾅과 퐁살리의 통치권을 확보하였다. 드디어 1950년10월22일 프랑스-라오스조약에 의해 완전 독립을 달성하였다. 그후 빠텟라오와 우파, 중도파는 라오스의 통치권을 놓고 대립하였다.

-라오스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 성립

1958년 좌익인 라오 애국전선이 총선에서 승리하였으나 미국은 붕움(우익)을 지원하여 좌익정부와 내전을 일으키게 하였다. 내전이 계속이어지자 1961년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제네바 국제회의”에서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듬해 좌파, 우파, 중도파의 연립 정부가 수립되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확대와 동시에 라오스 내전에 개입하여 비엔티안 정권과 우파에 경제, 군사적 원조를 해 주었다. 베트남전이 미국의 패배로 끝나고 1973년 라오스 평화회복과 민족화합 달성에 관한 협정이 조인되었다. 1974년 우파인 빠텟 라오가 라오스“임시 민족 연합정부”와 “민족 공동정치평의회”를 수립하였다.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차례로공산화되자1975년 빠텟라오는 무혈혁명을 일으켜 1975년 12월2일 왕정을 폐지시키고 “라오스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라오스 인민 혁명당이 정권을 잡아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에 태국은 국경을 봉쇄하고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원조를 중단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또한 고급 관리들과 지식인층, 화교로 대표되는 경제분야에 종사하던 국민들은 태국으로 탈출하여 행정, 경제 등의 중추적인 기능마비 상태에 혼란을 가져왔다. 라오스 정부는 인민재판이나 재교육을 실시하는 등 강압적으로 국민들을 통제 1976년 많은 사람들이 재교육 캠프에 끌려가 영양실조와 말라리아 등의 질병으로 죽어 갔는데 루앙프라방 왕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4)현대의 라오스

    공산 라오스 정부는 베트남, 중국, 소련, 캄보디아와 유대를 강화했다. 국경을 봉쇄했던 태국도 쿠테타로 정권이 바뀌자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1978년 중국-베트남간의 국경 분쟁시 베트남을 지지 발언해 중국과는 급속도로 냉각상태에 들어갔다. 80년대 후반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에 자극 받은 라오스는 사회주의최대 허용 범위 내에서 경제를 개방하였다.

일본, 호주, 미국,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 중국 등과도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 개발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1987년에는 태국과의 국경문제로 대규모의 군사분쟁이 발생하였으나 이듬해 2월에 정전 협정을 맺고 경제 교류에 중점을 둔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89년 3월에는 사회주의 체제 이행 후 최초로 최고인민의회 선거를 직접 선거로 실시하였고 1991년 8월에는 헌법을 새로 제정 겉으로는 인민 민주주의를 표방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발전을 위하여 노선을 변경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97년 아시아를 휩쓴 경제위기 여파로 라오스의 경제는 다시금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다.

1989년 라오스는 경제발전을 위해 개방하기 시작하였다.

라오스의 공산품은 거의가 태국과 중국, 베트남에서 수입되고 있어 비싼 편이며 우리나라 중고 자동차가 라오스 차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2003년 투어리즘 국제 학술대회가 비엔티안에서 열린 데 이어 2004년 11월 말경에는 아샘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라오스는 점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때묻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순수함만은 변화의 바람 속에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16.비엔티안 둘러보기

  1)왓 탓 루앙

     탓 루앙이란 “왕국의 성스러운 탑”이라는 뜻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파 쩨디로까줄라마니(존귀하고 신성한 탑)” 이며 황금색으로 되어 있다.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불교유적지로 라오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불탑으로 국가를 상징하는 표장 무늬로 사용하고 있다. 1566년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긴 “씻타티랏 왕”에 의해 지어졌으며 그 후 싸얌군의 침입으로 약탈 소실된 것을 1936년 “짜오아누 왕”이 재건하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보수되어졌다. 그의 동상이 탓 루앙 앞에 서 있다.

탓은 원형형태의 모난 탑 모양을 한 라오스 양식의 쩨디(탑)를 말한다.

본래 탓 루앙의 주변에 만들었으나 현재는 북쪽의 왓 루앙느아와 남쪽의 왓 루앙따이만 남아있다. 첫단 부분은 크메르 인도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각면에 공양을 하도록 작은 사원을 만들었다. 두 번째 층에는 연꽃 벽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30개의 스투파가 있는데 부처님의 가슴뼈를 담고 있다고 전해진다. 중앙에 높이 솟은 탑은 45m로 연꽃 봉오리를 형상화하고 있다. 금빛으로 된 강렬함과 단순함을 지니고 있다. 11월 중순에 이곳에서 열리는 축제는 일주일간 계속되며 순례를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2)왓 씨싸켓

    짜오아누왕에 의해 1818년에 지어진 사원으로 1828년 싸얌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다시 지어졌다.

현재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사원의 중앙에 위치한 본당(씸)안에는 벽화가 남아 있다. 씨싸켓의 매력은 사원에 가득히 진열된 6800여개의 불상이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3)왓 파깨우

    1565년 쎗타티랏왕이 치앙마이 왕국을 다스리다가 란쌍왕국으로 돌아올 때 가져왔던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지어진 왕실 전용 사원이었다.

태국방콕에 있는 왓프라깨우와 동일한 이름에서 보듯 에메랄드 부다가 이곳에 안치된 것을 1779년 싸얌이 침략하고 불상을 방콕으로 가져가 현재 왓 프라깨우에 잘 모셔놓고 있다.

당시에 가져간 중요한 불상인 파방은 라오스로 되돌려져 루앙 프라방에 보관되어있다.

사원 외부에는 동으로 만들어진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안에는 목조로 만든 파방 모조품(388번)을 비롯해 라오스 전형적인 불상, 쑤코타이 양식의 불상, 크메르 조각들이 있다.

그리고 각종 불상과 왕실에서 쓰던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있어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바깥에 돌 항아리가 전시되어 있는데 씨앙쾅의 항아리를 옮겨다 놓은 것이다.


4)빠뚜싸이(독립기념탑)

   1958년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이다.

프랑스 개선문의 디자인을 모방하여 만들었다.

꼭대기로 올라가면 비엔티안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탑 내부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있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시내 모습  (0) 2009.09.22
라오스 생활 기초 말 익히기   (0) 2009.09.22
라오스 웰빙 여핼기  (0) 2009.09.22
태종대에서  (0) 2008.03.11
소수민족학교-라오스  (0) 2007.08.20